한민족&한국인 스토리

은희경,<아내의 상자>

은희경,<아내의 상자>
아내는 꽤 많은 종류의 잡다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남들처럼 책을 통해 교양을 쌓고 정서를 함양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기가 읽은 책의 내용을 극히 단편적으로만 기억했으며 자기 식대로 엉뚱하게 왜곡시켜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녀는 기억들을 머릿속에 쌓아 두는 대신 상자에 담아서 뚜껑을 덮어 버리곤 했다. 그러고는 나머지 모든 시간에 잠을 잤다.
신도시에는 길이 없어요. 덩치가 큰 건물에 다 가로막혀 있어요. 신발을 신고 산책이나 하려고 나갔다가도 길이 다 끊어져 있어서 그냥 돌아와 버려요. 찻길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그녀는 고층 건물 사이의 찻길을 몇 번 건너갔다 오면 지치기 때문에 잠이 오는 거라는 주장도 했다.

아내의 잠은 이상할 만큼 깊었다. 그녀는 몸이 아플 때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 심지어 화가 났을 때조차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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