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산에 나무 한 그루 있었다.
빈 산에 나무 한 그루 있었다.
피곤했었다. 길고 긴 싸움에 나는 지쳐 있었다. 죽음의
예감이 나를 누르고 있었다. 나무가 있어도 산은 빈 산 같았고
오른쪽도 왼쪽도 하늘도 모두 지옥이었고 오직 외줄만이 나의
갈 길이었다. 그것은 칼날 위에 나를 눕히는 것, 죽임을 죽는 것.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다. 그땐 그랬다. 그러나 아주 작은 풀꽃
같은 예감이 하나 있긴 있었다. 그것은 이 죽음뒤에 신생(新生)
이 있으리란 단순한 것이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이 희미한 작은 믿음이 사실은 나를 이끌고 있었고 다행히 살아났다.
그리고 이 믿음은 이제 나의 생활이 되었다. 그때 그 빈산에
분명 나무 한 그루가 있었던 것이다.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