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한국인 스토리

한겨레의 첫 이름 ‘배달’… 감동 사라지고 ‘배달앱’만 남아

한겨레의 첫 이름 ‘배달’… 감동 사라지고 ‘배달앱’만 남아

[강상헌의 만史설문] <40> 배달(倍達) 진단(震檀) 해동(海東)

우리는 배달겨레다. ‘배달’이란 이름, 한겨레의 첫 이름이면서 우리 역사를 아우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 모두의 제목, 가슴 뛰는 단어다.

역사교육을 헌 신발짝 취급해 온 무지몽매 정권들과 그 졸개들 탓에 이 말이 시나브로 감동을 잃었다. ‘젊은 그들’ 또는 고딩, 중딩, 초딩들에게 ‘배달의 민족’이 뭔지 물어보라. 또 그들의 두뇌에 든 ‘배달겨레’의 뜻을 들어보라. 물론 그 말만 망가진 것이 아니어서 더 큰 문제지만.

‘설마, 그럴라고!’ 하는 이도 있겠다. ‘배달앱’은 알아도 배달겨레 말뜻 아는 이 드물다. 짜장면, 치킨, 피자를 얼른 가져다주는 배달(配達)과, 스마트폰에서 그 주문을 쉽게 할 수 있는 ‘앱’이 워낙 성행하는 까닭인가? 그 말을 그대로 상표 삼아 ‘내 것’ 하며 배 두드리는 대단한 상술도 있다. 겨레 이름 ‘배달’의 의미가 희석(稀釋)되고 끝내 스러질지도 모르는 사정일 터.

그 배달과 겨레 이름 배달의 소리가 같음을 파고 든 패러디라고 푸는 이도 있다. 그러나 우리 젊은이들이 대개 치킨 오토바이의 그 ‘배달’만 아는 상황이니 패러디니 뭐니 하는 유식한 단어도 허망하달밖에. 요즘엔 신문사도 뉴스 배달을 한다. ‘배달의 한겨레’라는 이름으로 늘 스마트폰으로 소식이 온다. 더 헷갈릴 수 있겠다.

1934년 11월 ‘진단학보’가 창간됐다. 유서 깊은 진단학회가 내는 한국학 학술지다. 워낙 읽을 게 많은 세상이어서일까, 요즘은 쉬 보이지 않으나 예전엔 그 이름 모르고서는 (지식인) 행세 못했다. 꾸준히 발행되고 있다.

그 이름의 진단(震檀)은 무엇인가? 배달처럼 우리 겨레를 이르는 이름이다. 해동(海東), 동국(東國) 등과 같은 맥락(脈絡)을 가진 제목이다. 대한민국과 배달, 진단, 해동, 동국 등의 관계는 무엇인가? 왜 저 말들이 우리의 이름이 됐을까?

“다 아는 얘기 왜 또 하나?” 할 이도 있을 터다. 그러나 그 ‘다 아는 얘기’를 왜 자녀에게, 제자에게, 아우에게, 또 이웃에게 알려주지 않아 겨레 이름 뜻이 망가지는 이런 상황을 불렀는지를 내내 생각해 볼 일이다. 새삼스럽게 그 말들을 주제로 삼은 이유다.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塹星壇)에서 선녀 복장을 한 아리따운 여인들이 전국체전 기간 동안 주경기장을 환하게 비출 성화 채화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마니산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이라 하여 겨레의 성스런 장소로 여겨진다. 매년 전국체전에 쓸 성화를 마니산에서 채화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배달(倍達)초기 인류의 삶에서 글자보다는 말이 먼저 생겨났다. 그림보다 소리가 먼저였다. ‘배달’이 무슨 말인지는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그 말이 문자로 적혀지기 전부터 한겨레가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었을 터다. 倍達이란 한자어는 소리에 어울리는 한자를 붙인 것이다. 동해의 독(돌[石·석]의 지역말)으로 된 섬 독섬에 독도(獨島) 이름 붙인 것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상고시대 이름. 한자를 빌려 ‘倍達’로 적기도 한다”라는 게 국어사전 ‘배달’ 항목의 새김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배달’의 풀이를 ‘우리 역사상 최초 나라, 또는 우리 민족을 지칭’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원래 상고(上古)시대는 역사의 기록이 없다. 후세들이 구전설화 등에 염원(念願)을 버무려 지으니, 신화도 되고 또 역사도 되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배달을 ‘환웅이 다스리는 나라, 즉 신시(神市)’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배달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우리의 이름임을 시사하는 계기로 회자(膾炙)된다.

‘배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밝달’, ‘빛의 근원’이란 뜻 또는 어원을 가진다는 주장이 있다. 박달 임금 단군(檀君)신화는 우리의 건국신화다. 박달나무 단(檀)의 ‘박달’과 ‘배달’의 발음을 견주어 두 말의 관련성을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추론(推論)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 이런 이야기나 이름이 처음 지어질 때에는 훈민정음(한글)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구전), (아쉬운 대로) 한자를 빌려 그 소리와 뜻을 붙잡아 적었을 것이다.

북한이 1994년에 만들어 ‘단군의 묘’라고 소개하고 있는 평양 근교 단군릉. ‘단군 부부의 유골’도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진단(震檀)가장 간명한 해석은 ‘동쪽 단군의 나라’다. 동아시아 사람들의 삶과 사상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 온 점술서 ‘주역(周易)’의 8개 점괘(占卦) 중 하나인 진(震)은 움직일 동(動), 봄 춘(春)을 상징하며 방위(方位)로는 동(東)에 해당한다. 해 떠오르는 곳의 봄처럼 생동감 넘치는 땅, 震이란 단어를 채용(採用)한 우리 선조들의 밝은 뜻이었으리.

태극(太極)이 변해 음(陰)과 양(陽)으로, 음양은 8괘로 변한다. 즉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괘가 되었다. 음과 양의 태극 주위로 하늘, 땅, 물, 불을 표상하는 건곤감리를 그리는 태극기를 통해 우리는 매일 그 기운을 호흡한다.

게다가 그 震의 뜻은 ‘천둥소리’다. 벼락 치고 천지가 흔들려 모두 두려움에 떠는 것이 천둥이다. 지진(地震·earthquake)의 ‘진’이다. 뜻으로, 또 상징으로 압도적인 힘의 글자를 제 이미지로 삼은 뜻이 ‘진단’인 것이다. 檀 대신 아침 단(旦)자 쓰는 진단(震旦), 나라 국자 쓰는 진국(震國)이라고도 했다. 震旦은 대조영의 나라 발해(渤海)의 첫 이름이기도 했다.

웅녀(熊女)설화를 묘사한 고(故) 이만익 화백의 1977년작 ‘웅녀도’. 단군 주역 건국신화의 중요한 장면이다.
◆해동(海東)동국(東國), 해동가요(시조집), 해동통보(동전) 등의 이름에 든 해동은 중국의 앞바다인 발해(渤海·보하이)의 건너 동쪽 땅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바다 건너 서쪽 중국에서도 우리를 그렇게 불렀다.

약동하는 느낌의 동(動)자와 발음으로도, 상징의 이미지로도 통하는 글자다. 또 봄의 상징인 데다 해 뜨는 방향인 동(東)을 좋아했던 것이다. 마다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그래서 ‘동국여지승람’과 ‘동국통감’처럼 바다 海를 떼낸 ‘동국(東國)’이란 이름도 ‘해동’과 마찬가지로 역사책에 숱하다.

조선(朝鮮), 고려(高麗) 등과 함께 우리 대한민국을 부르는 그 이름들은 장쾌(壯快)하고도 고아(高雅)하다. 너와 나를 닮았다. 우리는 쩨쩨하면 안 되는 겨레인 것이다.

강상헌 평론가·우리글진흥원장 kangshbada@naver.com

■ 사족(蛇足)진(震)자의 윗부분 비 우(雨)자는 날씨와 관계되는 글자를 만든다. 눈 설(雪), 구름 운(雲), 이슬 로(露) 등 雨 부수(部首)의 글자들을 말한다. 옛 사람들에게 비는 기상 현상으로서뿐만 아니라,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였으리라.

震자의 아래 [신]이라고도 읽는 진(辰)자는 큰 조개의 껍질로 만든 농기구나 입을 벌리고 살을 내민 조개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雨자처럼 처음 글자인 갑골문에서부터 보이는 역사 오랜 글자다. 震자는 雨의 뜻[형(形)]과 辰의 소리[성(聲)]을 합친 형성(形聲)문자다.

갑골문부터 현대 해서체까지 진(辰)자의 변화. ①갑골문(甲骨文), ②금문(金文), ③소전체(小篆體), ④예서(隸書), ⑤해서(楷書). 이락의 저(著) ‘한자정해’ 삽화에서 인용했다.

이 辰[신 또는 진]자는 별 이름이나 지지(地支)의 명칭으로 쓰인다. 또 날짜나 때 등을 이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생일을 이르는 탄신(誕辰)이 그런 쓰임이다. ‘탄신일’은 그래서 옳지 않다. 辰이 일(日)이다. 농사 농(農)자, 글자 모양만으로 ‘별의 노래’라고 푸는 사이비 한자 교본도 있다. 그래서 ‘새벽별 보고 집을 나서는 것’이 농사라나. 별 辰자와 노래[곡조(曲調)]를 상상한 짝퉁이다. 어원(말밑) 톺아보면, 밭 전(田)자의 변형[曲]과 큰 조개의 껍질로 만든 농기구 그림(기호)을 합친 것이 農이다. 한자의 1획 1점에 의미 없는 것이란 없다. 그 안에 역사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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