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공자의 유언이었다. 중국 고대사를 흔히 하ㆍ은ㆍ주(夏殷周)라고 하는데 그 중 은(殷)나라는 동이족이 세운 국가였다. 은(殷)나라는 서기전 17세기 경 수립되었다가 서기전 11세기 경 은나라의 제후국이었던 주(周)나라 서백(西伯ㆍ무왕)에게 멸망했다. 맹자는 ‘이루(離婁) 하’편에서 “순(舜)임금은 저풍(諸馮)에서 태어나서 부하(負夏)에 이주해 살다가 명조(鳴條)에서 돌아가셨으니 동이사람(東夷之人)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인들이 성인(聖人)으로 추앙하는 순임금도 동이족인 것이다. 이처럼 중국 고대사료에는 동이족에 대한 사료가 의외로 많다.
그런데 은나라와 주나라를 구분 짓는 징표 중의 하나는 영성(靈性), 즉 신성(神性) 숭배 여부이다. 은나라는 중국 연구자들도 신정(神政)국가라고 할 정도로 신성이 강했다. 은나라의 신성을 잘 말해주는 것이 거북의 껍질이나 소의 어깨뼈 등에 새겨진 갑골문(甲骨文)이다.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안양시(安養市) 소둔촌(小屯村) 일대가 고대 은나라의 수도였던 은허(殷墟)인데, 현재 은허박물원(殷墟博物院)이 세워져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갑골편은 약 16만여 편이고 여기 사용된 글자 수는 모두 5,000여 자이며, 현재까지 그 뜻이 확실하게 밝혀진 글자는 1,000여 자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한자(漢字)를 사용하고 있었으면서도 20세기 초까지 갑골문이 한자의 원형이란 사실을 몰랐다. 1899년 북경의 국자감 제주(祭酒) 왕의영(王懿榮)이 이 의문을 풀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갑골은 미스터리로 남았을 가능성도 있다. 안양시 소둔촌의 농민들은 밭에서 갑골을 발견하면 약재로 팔았다. 글자가 새겨져 있으면 약재상들이 사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일부러 글자를 지워서 팔기도 했다고 한다. 왕의영이 병에 걸리자 집안사람들이 북경의 한약방에서 약재를 제조해왔는데 그 중에 글자가 새겨진 갑골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용골(龍骨)’이라고 불렸다. 왕의영이 이 뼈조각에 새겨진 글자가 자신이 평생 연구하던 금문(金文ㆍ청동기에 새겨진 글자)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고 더 많은 갑골을 구해 연구한 결과 갑골문이 한자의 원형이란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대부분의 갑골문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내용이다. 하늘에 묻는 점복(占卜)은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점을 치기 위한 전 단계로 전문 무인(巫人)인 정인(貞人)이 거북의 내장을 제거하고 등과 배 부분으로 나누는 것 같은 제사 준비를 한다. 정인이 준비를 끝내면 은나라 군주는 제사를 지내는 향(享)에 임어한다. 그러면 점복(占卜)이 시작된다. 첫번째는 점치는 날짜와 정인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으로 전사(前辭)라고 한다. 두번째로 점칠 내용을 적는 것이 명사(命辭)이다. 예를 들면 언제 비가 올 것인지 혹은 언제 적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그 날이 길하지 불길한지 등을 묻는 것이다. 쑥대 같은 것에 불을 붙여 거북 껍질에 대면 표면이 갈라지는데 그 갈라지는 방향을 보고 하늘의 뜻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 갈라진 방향을 보고 국왕이 하늘의 뜻을 해석한 것이 세번째 점사(占辭)이다. 즉 정(丁)일에 비가 올 것이다(丁雨)라는 등의 내용이다. 그 해석이 맞았는지를 적은 것이 마지막 험사(驗辭)로서 실제로 정일에 비가 왔는지 여부를 적는 것이다. 대부분의 갑골문은 점사와 험사는 생략되어 있는데, 이는 국왕 혼자만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왕의 해석이 틀렸으면 나라를 통치하는데 권위의 손상을 입기 때문에 밖으로 밝히지 않는 것이다.
은(殷)나라의 시조는 설(契)인데, 사마천은 사기 ‘은(殷) 본기’에서 은나라 시조 설의 어머니 간적(簡狄)에 대해서 “세 사람이 목욕하러 갔을 때 검은 새(玄鳥)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삼켰더니 임신하여 설을 낳았다”고 말해주고 있다. 은나라도 부여나 고구려처럼 그 시조가 난생(卵生)사화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천주교 선교사가 오기 전에 자생적인 천주교 신자들이 있었고, 서양 선교사들이 오기 전에 개신교 성서 일부가 번역되어 있던 나라였다. 이상(理想)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우리 민족의 영성(靈性)은 그 유래가 깊다. 크리스마스에 떠오른 단상이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